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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이진민

by 시트러스블룸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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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엄마가 되던 그날부터였다.

철학을 일상으로 가져온 엄마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의 지은이 이진민 작가는 철학을 전공한 박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을 마주하는 일이라 철학이 들어오는 순간을 발견했다. 인류 대화의 기록인 철학을 모아 아이와 육아라는 주제로 엮어보았다고 한다. 엄마의 눈으로 편안하게 소통한다고 하니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타인이 되는 방법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타인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임신을 하면 내 뱃속에 있는 아이는 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자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과 자세, 내가 먹는 것들이 모두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 나의 모든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 나도 임신 기간 중에는 음식을 먹을 때 임산부에게 괜찮은 음식인지 검색하는 과정을 거치고는 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과 행동에 안전하도록 만전을 기했다. 내가 아닌 내 뱃속에 있는 작은 타인을 지켜야 했다.
그렇지만 임신의 과정이 성스럽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민망한 변화와 경험들이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처럼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한 세계로 나와 엄마가 되는 과정에 또 다른 이면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기를 품으면서 엄마가 아닌 '어미'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모유수유를 하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아이의 생존을 위한 동물의 본능이 발휘되는 것 같았다.
특히 모유수유는 흔히들 소가 된 것 같다는 표현을 한다. 나 같은 경우도 새벽에도 두세 시간 간격으로 눈도 뜨지 못 한 채 젖을 물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의 식사 때가 되면 속옷을 내려야 했다. 시간에 맞춰 먹이지 않으면 젖이 금방 차올라 아파오곤 했다. 그러다 젖이 새어 나와 옷이 젖는  반갑지 않은 상황도 발생하기도 했다.
작가는 1968년에 미국에서 브래지어 태우기 운동을 비롯하여 여성의 가슴해방에 대한 운동이 떠올렸다. 여성의 가슴이 시선의 끝에 머무는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개방적이라는 미국에서조차 2018년도까지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가 위법행위라 벌금을 낼 수도 있었다니. 한국에서는 모유수유로 인한 노출은 처벌대상은 아니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행위이다. 그렇다고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수유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커버를 하고 수유하는 모습을 반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임신과 출산으로 인간은 동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 과정을 인문학적 사고로 물음의 기회를 만들었다.



내 인생의 특이점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그 이전과 이후의 성질이 달라지는 특이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 아이를 낳으면 어떠냐고 물으면 우주의 중심이 바뀌는 것이라 대답했었다. 나에게서 아이로.
여기서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에 대한 관점을 떠올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자산과 도구의 관점으로 보았다고 한다. 노예는 인간들이 잘 살는데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는 살아있는 도구라 여겼다.  인간의 생존에서 사유하고 토론하는 일을 하는 시민과 달리 노동을 담당하는 노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생적으로 노예에 적합한 자들이 있고 거기에 여성을 포함시켰다. 작가에게는 코웃음 칠만한 소리였지만 아기를 키우다 보니 새삼 아프게 다가왔다고 한다. 아이의 생존에 필요한 도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해서.
하지만 그보다 힘든 것은 육체적 노동보다 감정 노동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시간도 없는데 이 과정을 감내해도 사회적 인정이나 승진 같은 건 없다는 것. 오히려 집구석에서 도태되는 기분인데 집에서 놀면서 애나 보는 사람이라 취급되는 것. 물론 예쁜 내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는 보람된 일이지만 그 안에 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들이 바깥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스마트폰이다. 같은 상황의 사람들과 서로를 응원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한다. 나도 아이 수유하면서 보는 스마트폰 안의 세상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위로일 뿐 보상이 되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주인인 일인칭 시점의 세계에서 아기를 통해 시선이 변화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중용을 지키며 시선을 넓혀나가야 한다. 나와 아이, 도전과 안전, 성공과 실패, 위생과 면역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루소는 인간들이 모여 살고 서로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이 싹튼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차이였을 뿐인 것들이 사회 안에서 주관적 의미를 갖게 되면 도덕적, 정치적 불평등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눈이 큰 사람이 예쁘다는 것, 중국의 작은 발을 만드는 전족 등 객관적 기준이 없는 것이 사회적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인간은 관계적인 기준으로 비교하여 허영심이 생기고 이로 인해 불행이 시작된다.
그래서 어른의 허영이 아이에게 투영되지 않도록 걱정을 덜어야 한다. 아이가 크면서 사회 안에서 비교당하고 불평등해질 터인데 내 품 안에서 만큼은 편안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부터 똑바로 살면서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엄마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다. 어느 드라마와 책에서 들었던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라는 말이 너무 공감 됐었다. 그런데 아이라는 존재가 나를 자라게 하고,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키워내고 아이는 나를 자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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