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숲은 철학하는 엄마 이진민 작가가 두 번째로 출간한 책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인생을 살아갈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시대에도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환경은 없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는 배고픔으로, 어느 시대에는 전쟁으로, 그다음은 경쟁의 사회로 인하여 아이를 잘 키워내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반면 정서적으로 불안한 시대에 아이들이 내던져졌다. 정신적인 질병이 흔해지고, 남녀가 대립하고 노소가 혐오한다. 디지털 범죄가 악랄해지고, AI의 등장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한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일까, 멀리 보고 기본을 생각하며 고민한 작가의 흔적을 들여다보았다.
어른들은 잃어버리고 아이들은 놓치고 있는 것들
노르웨이에는 '까진 무릎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이의 다친 무릎은 아이가 신나게 놀고, 작은 어려움을 견디고, 늘 보호받으려고 하지 않고,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표시이다.
안 위험해 보이는 것도 상황에 따라 가끔 위험한 것으로 돌변한다. 타는 목을 축여준 물이 바닥에 쏟아지면 나를 미끄러지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어떻게 다 알아서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것을 차단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세상을 만지고 껴안을 수 있을까.
사실 레벨 97의 능력자로서 레벨 1의 플레이를 지켜본다는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질근질한 일이다. 하지만 자꾸 문제를 해결해 주면 아이들은 당연히 여기고 고마움 대신 뻔뻔함을 키우게 된다. 그 뻔뻔함까진 참을 수 있는데 자기 부주의나 잘못을 주변 어른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그 꼴만큼은 못 보겠다.
아이란,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실수도 잦고, 세상에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사고를 칠 확률도 높은 그런 존재이다. 느리고 서툰 존재들에게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어른들의 갑질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나눴던 대화 내용은 잊고 느낌만 남긴다고 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온라인 세계의 인간은 잔인함의 온도가 조금 높아진다.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일단 사랑을 듬뿍 주면서 사랑받는 경험을 단단히 만들어 준다. 둘째는 내면의 상처를 서로 보이고 안아주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내 맘 같지 않기에, 그리고 때로는 내 맘을 나도 모르기에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실망을 주게 되는 것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공부라는 것은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고 생각의 힘을 키워 성숙한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사람은 간단히 말해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어떤 주제든 잘 이해하고, 요지를 잘 파악해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들을 주 알며,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료히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공부화 학력, 즉 성숙과 학력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하면 꼭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지 않더라도 생각의 언어가 풍부해지면 책이며 영화며 노래며 세상 풍경이며, 그 모든 것이 나에게로 닿아오는 속도와 질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웠으면 좋겠다. 청소하고 빨래하는 법,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 돈 관리를 하는 법, 요리하는 법, 응급처지법, 제대로 된 성교육 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꾸준히, 평생, 쉬어가며. 운은 부가적으로 따를 뿐. 성실과 열심히야말로 운의 기본값이다.
하지만 힘써 배우되, 학문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품고 학문을 대하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사랑하는 눈빛, 따뜻한 밥 한 그릇, 강아지의 온기, 아주 작은 다정함 같은 것들이다.
놀이는 아이들이 세상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세계이다. 그런데 어른에게 논다는 것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지낸다'는 것이 아닌 '직업이나 일정하게 하는 일 없이 지낸다'가 되어버렸다. 아이는 놀이를 잃지 않았으면, 어른들은 다시금 놀이를 삶에 채워갈 수 있었으면.
아이들이 이것만큼은 단단히 배웠으면 좋겠다
경제관념이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돈이 대접받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교육은 뒤따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 세 가지 측면에서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비와 경영의 경험 쌓기, 취향 만들기, 그리고 관대함의 연습. 첫째, 소비할 때 내가 이 물건을 사는 것이 나와 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인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소비할 때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인생을 '산다'와 물건을 '산다'가 우리말로 다르지 않은 건 그래서 내겐 꽤 의미 심장하다. 둘째, 소비하는 행동을 통해 작게나마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한다. 마지막은 용돈을 통해 관대함이라는 미덕을 연습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의하면 관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위하여 주며, 올바르게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줄 만한 사람에게 줄 만한 양을, 줄 만한 때에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주는 사람이다. 또한 관대한 사람은 주는 일과 취하는 일을 올바로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취할 곳에서 마땅한 양을 취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가치 있게 노동을 하고 그 대가를 적절히 받는 것, 인연이나 친분에 기대어 너무나 당연하게 타인의 능력과 시간을 내 것처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제대로 부탁해야 한다.
무엇보다 적은 것을 가지고 웃으며 사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적은 돈으로도 비참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가장 큰 자산이며, 아무나 갖는 게 아니다. 이건 아이에게 전하는 말이자 사실 어른으로서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중요'와 '소중'을 구별하는 눈을 갖기 바란다. 마음사전에 실린 김소연 시인의 구분에 따르면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고, 중요한 존재는 그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시인은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고,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독일의 전문가들은 '성교육은 생명교육, 인권교육이자 문화교육'이라는 점을 되풀이해 언급한다. 좋은 성교육이라는 것은 어린 나이부터 우리의 삶이 다양하나는 것을 가르치는 것, 생명과 인권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좋은 성교육은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인권 개선에 기여하기 때문에 성교육만으로도 더 관용적이고 열린 사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 아닌 만물의 친구로 자라야 한다. 지구와 환경을 푸르게 하고 동물을 건강하게 지켜내야 한다. 환경 문제에 주목하여 기업에서도 ESG(Environmental(환경보호) Social(사회 공헌) Governance(윤리적 경영)) 기준에 맞는 경영을 하겠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삶으로 지구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멋진 우리의 일원이 되기를
어떤 언어를 어떻게 배워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언어가 풍요로워야 내 세계가 온갖 빛깔과 향으로 풍성해진다. 이름의 경우 정확한 뜻을 설명하되 편견이 들러 붙지 않도록 부모들이, 나아가서는 사회 저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 definition를 바로잡는 일은 정의 justice를 바로 세우는 디딤돌이 된다. 예를 들어 '광주 폭동'이 '5.18 민주화 운동'이 되는 것. 파출부나 때밀이 대신 가정관리사, 목욕관리사로 부르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조심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언어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빚어낸 예술 작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과 역으로 일맥상통하는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독일어 단어를 보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솔직함에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아름다운 독일어 단어지만 번역하는 것이 꽤 어렵다는 합질리히카이튼(개인이 물질적으로 가진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를 모두 의미하는 단어로서의 '소유'), 게보어겐하이트(든든함, 아늑함, 사랑, 친밀감, 열린 마음 같은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 같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면서 이런 단어를 만들어내 사회와 그 안에 든 마음을 생각했다. 반대로 정情, 한恨, 효孝 같은 번역 하려면 꽤나 어려울 우리 단어들과 그 정서를 굽이굽이 담아냈을 무수한 삶도 떠올려봤다.
내 가치관이 녹여져 있는 책
이 책,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흩어져 있었던 가치관이 한 데 모여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깔끔하고 재미있게 그렇지만 가볍지 않게 쓰여 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부럽기까지 했다. 내가 아이에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처럼 이야기해 줬더라면 아이가 지금처럼 '공부=문제집'이라는 끔찍한 생각을 안 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위생관념이 없고 청소하는 방법, 요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보면 학교에서 기본 과목으로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정에서 보고 배운 것도 있지만 그때는 나의 몫이 아니었기에 독립 후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방법은 정말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돈을 쓰며 취향을 알아가는 것, 돈을 쓸 때 안 쓰 때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 등.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은 것으로도 비참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요즘 SNS의 발달로 타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쉬워진 만큼 많이 갖고도 더 많은 것을 가진 자를 보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방송 이후에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하여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의견을 보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나가 나라의 출산율을 좌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겠지만 그것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가 되고, 맘충이 되지 않게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다녔던 때를 생각하면 이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공감한다. 그러한 이름이 생겨나는 순간 그 조건을 가진 사람은 일반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적해서 남자를 비하하는 단어들이 생겨난 것을 보고 갈등이 더욱 깊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건 사랑하는 눈빛, 따뜻한 밥 한 그릇, 강아지의 온기, 아주 작은 다정함 같은 것들이다."라는 구절이다. 나와 내 아이가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되길, 따뜻한 것으로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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