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채식주의자라는 책이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2018년, 같은 작품으로 스페인에서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작가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래서 선뜻 읽어지지 않았다. 상을 받은 작품은 나의 수준에는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로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고,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 나의 주저함을 후회됐다.
채식주의자 (영혜의 남편)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모든 것이 평범해 보이는 아내와 결혼했고 그 무난함에 만족했다. 하지만 아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후 아내는 너무나 특별한, 아닌 그에게는 특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 냉장고를 열고 가만히 있던 아내는 꿈을 꿨다는 이유로 채식을 시작했다. 아내는 일상생활을 담담히 해나가는 듯 하지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야위어갔다.
영혜는 남편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피와 고깃덩어리가 난자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나를 물었던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끌려다니는 꿈. 그런데 꿈속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생명을 해치고 생고기를 탐하기도 한다. 눈을 감기만 하면 그런 꿈을 꾸는 영혜는 잠을 잘 수도, 채식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 그녀를 이해할리 없는 남편은 아내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불편함과 아내로 인한 타인의 시선에 화가 난다. 처가 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장인어른의 강압이 가해지자 아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 영혜를 대하는 남편의 회피적인 태도로 보아 영혜의 남편은 그녀를 여자로서, 인간으로서가 아닌 같이 살기 편리한 도구 정도로 여기고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
비디오영상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찢긴 인간의 일상과 사실적 다큐를 만드는 예술가이다.
그런 그가 아내에게 처제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관능적이고 강렬한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이것을 이미지로 실현시키기 위한 강한 욕망을 느끼고 어찌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결국 선을 넘어선다.
하지만 영혜를 인간적으로 바라봤던 건 남편보다 형부였다. 그녀가 인생의 코너에서 가족이 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영혜는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그려낸 꽃이라는 이미지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일까. 선을 넘은 것은 형부뿐만이 아니라 영혜도 마찬가지였다.
몽고반점을 읽을 때는 욕망의 정체가 무엇인지 예술가의 세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욕을 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예술가의 이해되지 않는 목적에 같이 끌려가고 말았다. 정말 그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어떤 해방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혜의 등장으로 역시 그것은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불꽃 (영혜의 언니 인혜)
삼 남매의 장녀로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영혜의 언니 인혜. 손이 거친 아버지 밑에서 동생 영혜를 보살피며, 성인이 되어서 부지런하게 독립해 가며 가족들에게 희생하며 사는 인물이다. 이 책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느껴졌으나 나에게는 제일 힘든 사람으로 여겨졌다.
지쳐 보이는 남편을 만나고 그를 자신의 힘으로 쉬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건 열아홉부터 홀로 서울생활을 헤쳐 나온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나에게 과분해.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그 말은 다소 어려웠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오히려 그가 사랑 따위에 빠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고백은 아니었을까.
늘 밝고 씩씩해보이는 그녀였지만 사실은 지쳐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다정한 남편도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생 영혜를 보살폈지만 영혜는 기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편과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한 동생 영혜를 끝까지 책임진다. 강제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행하는 의료진들에게서 영혜를 지켜내고자 한다.
몰입감 있는 소설
책의 호흡을 따라가며 읽는 내내 나의 심장도 쿵쾅쿵쾅 했다. 영혜가 꿈을 묘사할 때면 내가 그 안에 있는 듯하였고, 예술이라 치장하는 욕망 안에 나도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인혜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혜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너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내를 성폭행 하는 남편, 어렸을 적 학대를 행하고 채식하는 영혜를 붙잡고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동조하는 남동생, 영혜 몰래 염소고기가 든 한약을 먹이려는 어머니, 영혜를 성적 대상으로 탐하는 형부, 영혜의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영혜에게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진들.
심지어 책 속에서 조차 영혜는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부분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영혜는 조금씩 자신을 내비쳤을 뿐이다. 모든 것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그녀는 아무도 해하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영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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